긴장할 것 같은 분위기
사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1970년대 전후로 볼 수 있는 마을 가게의 모습입니다.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죠
쥐가 너무 귀엽다..
대전시립박물관에서 1970년대 당시 쥐잡기 소탕작전이라는 전시가 있어서 다녀왔어~50m 네이버 Corp. 더보기 / OpenStreetMap 지도 데이터x 네이버 Corp. / OpenStreetMap 지도 컨트롤러 범례 부동산 거리 읍·면·동·시·군·구·시·도의 나라
대전시립박물관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안대로 398
1970년 당시 농림부가 추산한 쥐의 수는 9,000만 마리1960년대에는 매년 1월 상자의 날(새해 들어 가장 먼저 맞는 쥐의 날)에 논두렁을 태우는 논두렁 불놀이를 하며 쥐를 쫓아다녔고, 집안에서는 옷을 만들지 않거나 밤 12시에 절구질을 하면 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꿰매지 않았고, 곡식이 없으면 빈집털이라도 붙었죠.그 외에도 쥐잡기, 쥐잡기를 하거나 고양이를 기르는 등 쥐를 쫓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70년 당시 농림부가 추산한 우리나라 쥐는 9천만 마리였습니다.당시 한국의 인구 3천만 명보다 3배 많은 숫자로, 인간의 나라라기보다는 쥐에게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숫자였습니다쥐잡기 포스터와 쥐잡기쥐는 엄청난 번식력과 곡식을 빼앗아 먹는 습성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그 당시 인간의 삶에 위협이 되는 유해한 동물이었습니다.그러나 당시 부족한 기술력으로는 쥐의 번식과 침입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새해가 되면 소원을 빌거나 민간 신앙에 의지해서라도 쥐가 없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쥐와의 전쟁 전국 쥐잡기 운동국가 주도의 본격적인 쥐 소탕 작전의 시작은 1970년 1월 26일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온 ‘전국 쥐잡기 운동’부터입니다.식량 안보를 중요시했던 정부에게 쥐는 반드시 소탕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쥐가 먹는 식량은 1년 240만 가마로 당시 곡물 생산량의 8%, 약 25만 명의 1년치 소비량일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이날 행사를 위해 전국 540만 가구에 20g의 쥐약(인화아연)을 무료 배급하고, ‘한시에 쥐를 잡자’, ‘다함께 쥐를 잡자’라는 슬로건 아래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쥐잡기 운동에 동참했습니다.출처 국가 기록원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쥐를 잡자 게임도 이때 하지 않았나 싶어.. 4천만 마리 쥐 소탕1970년대 쥐잡기 운동을 통해 정부 추산으로 총 41,514,149마리의 쥐를 소탕했습니다.정부는 더욱 박차를 가해 쥐잡기 운동 2차를 실시해 일반 가정뿐만 아니라 공공 건물, 정부 창고, 병영 등까지 확대했습니다. 잡은 쥐꼬리를 학교나 관공서에 가져오면 쥐꼬리 하나당 연필을 주기도 하고 복권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세대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국가 기록원이듬해인 1971년에는 제3회 전국 쥐잡이를 실시했습니다. 이번에는 무상으로 쥐약을 배급했을 뿐만 아니라 사업 홍보를 위한 포스터를 제작하고 차량과 통행이 많은 곳에는 표어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1972년 쥐띠에도 쥐잡기 운동은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학교는 쥐잡기 포스터 공모대회와 쥐 퇴치 웅변대회를 열고 표어를 공모했으며 거리에는 쥐는 뚱뚱하고 사람은 굶는다. 쥐를 잡아 없애자 단번에 쥐를 잡자. ‘쥐약 놓는 날 0일 오후 7시’ 등의 구호 아래 쥐가 쌀가마니를 앞발로 잡고 뜯어먹는 그림을 담은 포스터가 전국에 붙었습니다.1972년 쥐잡기 운동에서는 4700만 마리의 쥐를 잡아 목표 대비 90% 이상의 실적을 올려 110만 석의 양곡 손실을 방지했다고 정부는 발표했습니다.인간 입장에서는 의미있는 성과였지만 쥐 입장에서는 거의 몰살당했다고 할 수 있죠ㅜ 1970년대를 넘어 1980년대에도 쥐잡기 운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초창기처럼 학교에 쥐꼬리를 가지고 가서 점검을 받는 일은 없어졌지만, 정부에서는 1년에 두 번 연중행사로 대대적인 쥐잡기 운동을 했습니다. 집쥐의 시대1990년대 들어 이렇게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벌였던 쥐잡기 운동은 사라졌습니다.현재는 개나 고양이보다 쥐를 보기 힘든 시대가 되어 새해에 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출처 pixabay또한 햄스터와 같은 애완 쥐를 기르고 있는 집도 나왔습니다.바로 우리집처럼 ㅎㅎ 이런 배경에는 쥐잡기 운동과 같은 그 시절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대전시립박물관의 다른 포스팅은 아래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1만년전 한국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feat.대전시립박물관) 혹시 대전광역시 도안신도시라고 들어보셨나요? 2010년대에 대전광역시에 있는 공터에 도안신도시가 들어서… blog.naver.com감사합니다 🙂